AI 활용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 영화 <브루탈리스트>

오스카 10개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주연 배우의 헝가리어 발음 보정과 브루탈리즘 건축물 이미지/영상 제작에 생성형 AI를 활용한 것이 알려지며 오스카 출품 자격 논란과 규정 변경 필요성까지 제기된 브래디 코베 감독의 영화 <브루탈리스트(The Brutalist)>. 15분의 인터미션을 포함한 3시간 35분의 러닝타임, 이동진 평론가 언택트톡까지 도합 5시간 24분을 들여 영화를 관람하고 왔다. 내 척추...

발음 보정에는 스타워즈 다스 베이더 성우의 목소리를 영구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AI로 구현한 사례로 알려진 우크라이나 스타트업 리스피처(Respeecher)의 기술을, 이미지 생성에는 미드저니(Midjourney)를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번 논란은 이미지보다도 ‘외국어 연기까지도 배우의 역량인데 AI로 보정된 발음이 과연 배우 본연의 연기 실력이라 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러한 영화가 ‘아카데미 수상을 하기에 자격이 있는가’가 핵심으로 보인다.

AI 활용 사실이 알려지게 된 RedShark News의 인터뷰에 따르면, 배우들은 몇달간 전문가와 함께 헝가리어 방언을 익히고 연기를 충분히 잘 소화했으나 현지인이 들었을 때에도 일말의 어색함이 없도록 완벽하게 만들고자 배우들의 음성과 헝가리어가 모국어인 편집자의 음성을 AI에 학습시켰고, 원어민이 아니면 구사하기 어려운 단어와 모음 발음에 한하여 활용했다고 한다. 논란이 일자 감독은 연기자를 대체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연기의 ‘진정성’을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음향 팀이 연기에 대한 존경심을 담아 수작업으로 진행하였다고 입장문을 발표 했다.

이미지의 경우 어떤 툴을 썼는지는 사실상 확실하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감독의 말에 따르면 미술 감독 주디 베커와 미술팀은 그 어떤 건물도 AI로 제작하거나 렌더링하지 않고 모든 이미지를 아티스트들이 직접 손으로 그렸다고 하는데, 2022년 Filmmaker 매거진 기사(Artistic Outputs: Filmmakers and Production Designers on Using Generative AI)에 ‘브루탈리스트 제작 과정에 도움을 준 건축 컨설턴트 그리핀 프레이젠이 Midjourney를 사용해 세 개의 브루탈리즘 건물의 레퍼런스 이미지를 빠르게 생성하였고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이를 다시 그렸다‘는 미술 감독의 말이 남아 있어 사실상 영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활용하였는지는 작업자 외에는 알 수 없는 상태가 아닐까. (생성형 AI가 이미 견고히 학습된 특정 사조를 만들어 내는 것에 능하다보니 극중 라슬로 토트가 건축했던 브루탈리즘 건축물 기사 자료 사진이나 스케치에 활용했나 싶어 관찰하듯 유심히 봤는데, 판독(?)에는 실패했다. 설계 도면과 에필로그 비디오에 썼다는 말도 있고...)

굳이 말하지 않았다면 몰랐을텐데, AI 활용에 대한 공개가 긁어 부스럼인 업계에서 “인공지능의 활용에 대한 이야기가 논쟁적 주제가 될 수 있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는 입장과 함께 AI 도구가 제작자에게 제공해 줄 수 있는 이점에 대해 오픈 디스커션이 필요하다고 솔직하게 밝힌 제작자의 태도가 어쩌면 핵심 재료인 콘크리트와 구조를 숨기지 않고 대담하게 드러내는 브루탈리즘 건축 사조와도 닮아 있는 부분이 있다고 느껴진다.

브루탈리즘에서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키워드, 본질. 개인적으로 <브루탈리스트>는 인공지능을 단순한 꾸밈이나 어그로로 활용하지 않으면서 영화의 본질을 해치지 않는 ‘요소 기술’로서 잘 활용했다고 생각한다. (후반 작업 시간과 비용도 줄었다고...) 비슷한 맥락에서 몸보다 큰 제도판에 자를 움직여 가면서 손도면을 그리고 있는 영화 속 애드리언 브로디의 모습도 주목할만한데, 오토 캐드 프로그램이 없던 시절에 일을 하던 방식을 보며 바뀐 것은 도구이고 본질적인 역할이 바뀐 것이 아니라는 점을 우리는 쉽게 망각하는 것 같다.

다른 어떤 산업보다도 기술 발전과 흐름을 같이 하며 그 효과를 체감해 온 영화 업계에서, 생성형이 아닐 뿐이지 AI 기술이 녹아든 툴을 진즉 쓰고 있는 상황에도 매번 이렇게 AI 활용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 걸 보면, 여전히 변화의 과도기 속에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